A.
알퐁스 도데가 1873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하면서 알자스-로렌 지방을 프로이센 왕국(독일 제국)에 넘겨주는 시기를 배경.
알자스 로렌 지역은 원래 프로이센 영토였던 것을 프랑스가 점령하였다가 다시 돌려준 것이라고 함.
주인공 프란츠는 매일 학교를 지각하던 아이인데 어느 날에도 학교에 늦게 갔더니만 뜻밖에도 마을 어른들이 교실에 들어와 있어 의아해한다. 알고보니 그 지역이 독일 영토가 되었기 때문에 독일어 이외의 언어를 가르칠 수 없다는 명령이 베를린에서 하달된 뒤였다.
프란츠는 마을 사람들과 다른 학생들과 함께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을 받게 된다. 수업이 끝남과 함께 아멜 선생님이 "VIVE LA FRANCE!!"(프랑스 만세!!) 라는 구절을 칠판에 쓰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장면으로 끝나는 소설로, 민족의식과 모국어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는 소설이다.
(from 나무위키)
B.
알자스에서의 마지막 수업
원문:
https://www.newsverse.kr/news/articleView.html?idxno=3804
..
얼마 전 가까운 친구들 모임에 나갔는데 뜻하지 않게 와인을 한 병 선물 받았습니다. 친구들 간에 흔한 일은 아닌데, 그가 과거 해외 출장 시 그곳에서 마셔본 와인으로 맛이 꽤나 훌륭하다고 생각했는데 국내 어떤 와인숍에 갔더니 수입된 그 와인이 보여 반가움에 다량으로 구입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인 그 친구 기준에서의 양입니다. 일단 그런 구매 패턴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그는 입으로 와인을 마시는 정통 애호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선물 패턴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친구임에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가 준 와인은 날씬하게 빠진 병에 노란 레이블을 가진 화이트 와인이었는데 와인을 머리로 마시는 부류에 가까운 저는 집에 돌아와서 그것을 이리저리 뜯어보았습니다. 뒤의 레이블에 독일어로 쓰여있는 것을 봐서는 독일 와인인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앞 레이블에 쓰인 브랜드를 자세히 보니 제가 아는 지명이 보였습니다. 알자스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알자스면 로렌과 함께 붙어 다니는 프랑스의 지명인데 "왠 독일 말?"이란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리고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린 알퐁스 도데의 단편 소설인 <마지막 수업>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그 수업은 알자스에 사는 주인공 소년이 프랑스어로 받는 마지막 수업이었습니다. 소설에서 선생님은 칠판에 "프랑스 만세"를 프랑스어로 쓰고 그 수업을 마쳤습니다.
알퐁스 도데는 <마지막 수업>을 1871년에 썼습니다. 1870년 프랑스와 독일 간에 벌인 보불전쟁이 독일의 승리로 끝나가는 때였습니다. 2년에 걸친 전쟁으로 보이지만 실제 전쟁은 7월인 여름에 시작해 겨울인 이듬해 1월에 끝났으므로 6개월 정도의 전쟁이었습니다. 그 전쟁에서 조국이 그렇게 패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프랑스의 작가가 <마지막 수업>의 스토리를 그렇게 구성한 것입니다. 언어로 승부하는 작가이기에 그의 조국의 언어가 학교에서 더 이상 사용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고 한스럽게 생각하며 마치 소설 속 선생님이 된 듯한 심경으로 썼을 것입니다. 그 단편이 저를 비롯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보다 더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우리도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언어를 잃은 똑같은 아픔을 겪었기에 그럴 것입니다. 당시 조선어 말살정책으로 학교에서 일본어로 교육을 실시하고 창씨개명을 통해 이름도 일본어로 바꾸어야 했으니까요. 시대적 동병상련이 발동해서 우리 머리에 더 강하게 남아있는 그의 소설입니다.
그런데 당시 그들 프랑스인들 전체가 우리처럼 한글인 조선어를 사용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 영토 중 알자스와 로렌 지역의 주민만이 프랑스어를 더 이상 못쓰게 된 것입니다. 보불전쟁의 결과로 프랑스 전체가 조선(대한제국)처럼 식민지가 된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그 전쟁의 패배로 프랑스는 알자스와 로렌 이 두 지역을 독일에 넘겨야 했습니다. 전후처리를 위한 배상 협상에서 그렇게 결정이 되었습니다. 보불전쟁이 독일 역사에 있어서 의미 있는 것은 이렇게 영토도 늘렸지만 독일 통일의 꿈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과거 독일의 뿌리인 신성로마제국 개국 이후 중부 유럽에서 부침을 거듭했던 독일이 드디어 제대로 된 통일 제국을 건설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신성 로마 제국의 부흥기를 제1제국이라 부르고, 이 시기의 통일 제국을 제2제국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한 번 더, 2차 세계대전 시 등장한 히틀러는 발흥하는 나치 독일을 가리켜 제3제국이라 불렀습니다.
전승국 독일의 군주인 빌헬름 1세는 적지인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황제로 즉위하는 대관식을 열고 독일 제국을 선포하였습니다. 자국의 심장인 수도에서 적국의 왕이 황제 대관식을 열다니.. 아마도 프랑스인들은 커다란 굴욕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전까지 그는 1701년 신성 로마 제국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단독 국가를 수립한 프로이센의 군주였습니다. 그의 곁에 철혈재상이라 불린 비스마르크라는 민족의 영웅이 있어서 게르만인들의 숙원인 독일의 통일은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독일은 왜 알자스와 로렌 이 두 지역을 콕 집어 자국의 영토로 편입시켰을까요? 여기엔 다소 의외의 이유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 땅의 주인이 본래 프랑스가 아닌 독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역사적으로 알자스와 로렌 지역은 프랑스의 뿌리인 프랑크 왕국이 동서로 분열되며 동프랑크 지역에 속하면서 독일 역사권에 편입되었습니다. 이렇게 결정된 870년의 메르센 조약을 통상 독일 역사의 시작으로 봅니다. 동프랑크는 이후 독일 왕국(911~962)을 거쳐 오토 1세가 신성 로마 제국(962~1806)의 황제로 즉위하며 영토를 중부 유럽 전체로 확장하게 됩니다. 이때 그 제국의 선제후였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는 독일 왕국의 왕을 겸직하였습니다. 이 제국에서 1701년 위의 보불전쟁의 전승국이 된 프로이센이 독립해서 나간 것입니다.
프로이센(Preußen / Preussen)은 프러시아(Prussia)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프로이센의 영어명입니다. 프로이센의 한자 음차어는 보로서(普魯西), 또는 보로사(普魯斯)입니다. 독일의 프로축구 리그인 분데스리가엔 우리의 손흥민 선수가 양봉업자로 불리며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이는 명문팀 도르트문트가 있습니다. 그 팀의 풀네임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입니다. 그 리그엔 묀헨글라트바흐를 연고로 하는 보루시아 MG라는 팀도 있습니다. 이 보루시아(Borussia)는 프로이센의 라틴어명입니다. 프로이센을 한자어로 음차 시 이 라틴어를 따라서 불란서라 불린 프랑스와의 전쟁을 보불전쟁(普佛戰爭)이라 우리가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굳이 그렇게 한자로 음차하지 않고 원어로 불렀으면 더 분명했을 수많은 서양사의 사건들은 그렇게 한자어로 바뀌어 오늘날 우리를 더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범인은 서양사를 먼저 받아들인 일본 아니면 중국일 것입니다. 영어로 통일해 프랑스-프로이센 전쟁(Franco-Prussian War)하면 알기도 쉽고 간단한데 말입니다. 독일에선 독어로 나라 순서를 반대로 하겠지요. 우리가 부르는 보불전쟁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독일이나 프랑스에 가서 보불전쟁이라고 하면 그 국민들은 전쟁의 당사자임에도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것입니다. 보불전쟁의 '보'가 당최 궁금해서 찾아서 정리한 내용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런데 16세기 후반 프랑스는 신성로마제국의 로렌 지역을 프랑스의 주교령으로 편입시키더니, 1648년엔 30년 전쟁의 승리로 알자스 일부 지역까지 획득하였습니다. 그리고 1697년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알자스 지역을 완전히 병합하더니, 주교령이었던 로렌 지역도 1766년 모두 프랑스 영토로 귀속시켰습니다. 즉, 독일 문화권이었던 두 지역이 프랑스로 완전히 편입된 것입니다. 이 지역을 탐을 냈던 프랑스가 그렇게 야금야금 동진을 해 국경선을 라인강까지 확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탐을 내는 데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알자스는 예로부터 와인과 농산물, 그리고 풍부한 산림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리고 알자스와 그 곁에 붙어있는 로렌 통합 지역은 광물로는 프랑스 영토로 보면 프랑스 철광석의 90프로가 매장되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지역을 독일 영토로 계산하면 독일 전체 철광석의 35프로가 매장된 주요 광물자원 지역이 됩니다. 라인강을 사이에 두고 독일의 루르와 자르 공업 단지와 소위 콤비나트라 불리는 종합 공업단지가 되는 곳이 바로 이 지역입니다. 과거엔 땅 위의 농산물과 임산물로 가치 있는 지역이라면, 산업혁명 이후엔 지하자원으로 인해 공업용 가치까지 올라가 국가 산업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프랑스는 알자스와 로렌을 탐을 내어 약 200년에 걸쳐 그들의 영토로 복속시킨 것입니다. 즉, 독일의 입장에서 보면 보불전쟁 당시 역사적으로 600년 넘게 자국 영토였던 알자스와 로렌을 프랑스가 침략해 뺏은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은 그 전쟁의 승리로 빼앗겼던 그 땅을 다시 탈환하여 통일의 대업을 이룬 것입니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다소 무색해지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20세기 초 발발한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독일은 승전국인 프랑스에 꼼짝마라가 되어 다시 이 지역을 프랑스에 넘기게 됩니다. 프랑스의 입장에서도 그만큼 양보할 수 없는 지역이라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의견은 무시된 채 알자스와 로렌은 다시 또 프랑스 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40년 5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서부 전선을 넘어 프랑스를 침공합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이 지역 위쪽인 아르덴 고원을 기습적으로 주파하여 단숨에 수도인 파리를 점령했습니다. 프랑스는 알자스와 로렌을 더 이상 잃지 않기 위해 그곳에 마지노선이라는 철벽 군사 라인까지 구축해 놓았는데 독일은 그곳을 유유히 피해가 프랑스를 항복시킨 것입니다. 보불전쟁은 항복까지 6개월이 걸렸지만 이번엔 불과 6주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43년 독일의 히틀러는 다시 또 다시 알자스와 로렌을 전쟁 중에 공식적으로 자국의 영토로 합병하였습니다. 남쪽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개전 시 승리로 오늘날 크로아티아 지역인 옛 로마 제국의 땅 달마티아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시킨 것과 같은 실지를 회복한 것입니다. 하지만 독일의 패배로 대전이 끝난 후 알자스와 로렌은 다시 또 다시 또 프랑스의 영토로 들어가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구한 알자스와 로렌의 운명입니다. 역사적으로 이보다 더 자주 나라가 바뀐 지역이 있을까요? 우리 6.25 전쟁 때 주민들이 낮엔 마을에 들어온 국군의 편에 서고, 밤엔 산에서 내려온 인민군과 빨치산의 편에 서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흑역사를 떠오르게 하는 그곳입니다. 실제로 두 번의 대전 중에 알자스와 로렌의 주민들은 부역과 징집과 관련하여 그런 고초를 겪었습니다. 참으로 비극적인 일입니다. 프랑스 입장에선 자국의 동쪽 국경선이 라인강까지 가는 것이 여러모로 유용하고 유리하다는 판단이 서서 그곳을 결사적으로 사수하고 있을 것입니다. 라인강이 독일과의 자연스러운 국경의 역할도 하지만 풍부한 농업용수와 공업용수를 제공해 주니까요.
...(중략)..
지금 초등학교에선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모두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더 이상 언어 문제로 소설 <마지막 수업> 같은 마지막 수업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일지 모릅니다. 그래도 언젠가 독일과 프랑스가 또 전쟁을 하게 된다면.. 글쎄요.. 아예 그런 상상조차 하지 말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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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알폰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은 과거 민족 자긍심의 고취와 민족 문화 침탈을 규탄한다는 의미로 교과서에 나올만큼 높은 평가를 받던 작품이다.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고 작품 자체의 내용만 따진다면 매우 아름다운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이러한 문학적 평가와 윗 예시문에 나타난 역사적 평가를 더하여 '마지막 수업'을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주제의 글을 작성해라. (1200자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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